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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_암

(응답하라) 위암 수술(위 절제) 23일차 / 수술 후 쉬엄쉬엄 첫 등산

by (응답하라) 2023. 3. 19.

산정상

<2023.03.18 / 토요일 / 맑고 따뜻함 / 위암 수술 23일차>
오늘은 위암 수술(위 절제) 23일차이다. 수술 후 7일차에 퇴원했고, 입원 중에도 조금씩 걸었고, 퇴원 후에도 매일 약 5000보 이상 천천히 몸에 무리가 오지 않게 걸었다. 오늘은 예전부터 가끔 올라가던 집 근처 산을 등산하고자 마음먹었다. 위암 수술하고 1개월도 지나지 않은 지금, 산에 오르는 결심을 한다는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쉬엄쉬엄 걷는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가 가는 산은 정상까지 약 2.5km, 왕복 5.0km이다. 예전에 다닐 때는 올라서 정상 찍고 내려오면 약 1시간 반정도 소요되는 산이다. 


아침식사하고 잠시 쉬었다가 물 한병, 두유 하나 정도만 챙겼다. 별것도 없는데 등산배낭에 넣었다. 옷은 나중에 벗으면 되니까 춥지 않게 입었다. 오늘 날씨 좋다. 차를 타고 산아래까지 가서 주차하고 드디어 등산 시작이다. (10시 30분) 아~ 복대도 당연히 하고 갔다.

 
천천히 천천히 몸에 무리가지 않게 천천히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이나 특이사항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여태까지 산에 오를 때 보통은 내 스스로 정해놓은 시간 안에 하산하기 위해 아주 전투적(?)으로 걸었다. 앞서가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추월해야 했고, 오르는 중간에 한번 물 마시기 위해 앉아 잠시 쉬고, 정상까지 바로 직진이었다. 무작정 산정상만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늘은 하산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천천히 걷다 보니 햇살이 머리 위로 따뜻하게 내려오는 것도 느껴지고, 새소리에도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고 잠시 서서 새소리가 들리는 방향도 보고, 바람이 나를 스쳐 지나는 상쾌함도 맘껏 느끼고, 코끝에 전해지는 산냄새도 맘껏 맡고, 눈은 땅바닥이 아닌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 새, 바위, 하늘,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한 산수유나무를 본다. 아~ 진짜 자유롭고 상쾌하다.
이 산을 오를 때 항상 쉬던 곳까지 천천히 천천히 올라가 오늘도 배낭을 벗어내고 앉아 쉬었다. 두유 하나 천천히 마시고 다시 출발~ 조금 걷다 보니 배가 좀 아프기 시작했다. 두유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마시고 배아프기까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고, 좌우지간 위암 수술 후 자주 느껴지는 배통증이었다. 다행히 화장실 신호는 아니었다. 얼마 전에 갑자기 배가 아프고 순식간에 화장실 신호가 와서 엄청 당황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배 아플 때마다 조금 많이 신경이 쓰이긴 한다. 

천천히 걷다 보니 땀도 많이 나지 않았고, 정상에 올랐을 때 그다지 많이 힘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산 정상에서 저 멀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로움에 기분이 너무 좋다. 시간으로부터의 해방감과 같은 자유로움~ 정상에서 만나는 상쾌한 바람이 해방감과 같은 자유로움을 더 크게 해준다. 아~ 진짜 좋다.

보통이면 1시간 반이면 정상 찍고 하산하는데 오늘은 천천히 천천히 걸으니 10시 30분에 올라 13시에 하산했다. 나는 오늘 1시간 동안이나 햇빛의 감촉, 새들의 소리, 바람의 소리, 산의 냄새, 나무, 바위를 보고, 듣고, 느꼈다. 그리고 시간으로부터의 해방감 같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세상에 던져지고 현생을 전투(?)처럼 살아오면서 이런 해방감을 느껴봤던 적이 과연 있었던가? 

위암 수술(위절제) 23일차에 수술 후 첫 등산을 천천히 천천히 했다. 내 몸에 큰 무리가 가지는 않았다. '위암 수술하신 모든 분들께 수술 후 이 정도의 날이 경과했다면 등산을 추천드립니다.' 이렇게는 말할 수 없지만,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천천히 천천히 등산을 하는 것도 해볼 만하다. 분명 수술 전과는 다른 괜찮은 등산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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